사진:   논산행복마을 치과진료 ,; 정태홍 아오스딩

 

생활말씀

2018년 12월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 4,4)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의 공동체에 편지를 썼을 당시, 그 자신이 박해의 대상이 되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사랑하는 벗들에게 “늘 기뻐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아니 거의 명령조입니다.

그런 명령이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 주위를 둘러볼 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기뻐하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생활고, 사회적 불의, 나아가 민족들 간의 긴장 상황에 압도되어 용기를 잃고 자기 안에 갇혀있지 않는 것만도 커다란 과제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지하게 살아갈 때 그렇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살아 계시며, 그분과 더불어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된 기쁨의 샘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 삶에 의미를 주시고 당신 빛으로 이끌어 주시며, 과거나 미래에 대한 온갖 두려움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난관과 유혹과 시련을 넘어설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끼아라 루빅, 「기쁨으로 초대」, 《치타누오바》 31(1987/22), 11쪽).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저 단순한 낙관주의,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안정감, 혹은 젊고 건강한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쾌활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개인적으로 만날 때 오는 결실입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바로 이 기쁨에서 남을 성심껏 맞아들이는 포용력, 주위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여유가 태어나는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필리 4,5 참조).

그뿐만 아니라 다른 기회에 바오로 사도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동반하면 마음의 평화 또한 샘솟습니다. 오직 이 평화만이 아무 적개심이 없는 그 기운으로 우리 주위 사람들을 동참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 시리아에서 전쟁의 큰 위험과 불안 속에서도 다수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복음을 실천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서로 간의 사랑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형제애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을 다짐하며 헤어졌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극심한 고통, 희망, 하느님 사랑에 대한 영웅적 믿음의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가족들과 난민 캠프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주위에 삶이 탄생하도록 노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페스티벌을 조직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참여하게 했고, 어느 지방의 중심지에서는 학교와 작은 정원을 재건하려 했지만 전쟁으로 완성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수십여 세대의 난민 가정을 돕고 있습니다. (…) 끼아라 루빅이 하신 말씀이 마음속에 되살아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한 방물 눈물 위에 반짝이는 햇빛, 핏자국 위에 피어난 장미꽃, 고통으로 순화된 사랑의 정수(精髓)입니다. (…) 그러므로 천국의 한 조각이 갖는 사도적 위력이 있습니다.”(끼아라 루빅, ‘기쁨’, 젊은이들의 대희년에, 1984년 4월 12일 로마). 시리아의 우리 형제자매들에게서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강인함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이 끔찍한 전쟁에서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희망을 증언하며, 그것을 이 여행의 동료들에게 전달합니다. 시리아의 여러분,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 수업에 감사드립니다!

레티치아 마그리

포콜라레운동 총본부 「생활말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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