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아침이슬, 대청호에서; 정태홍 아오스딩

2026년 8월 생활말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루가 1,46 참조)

 

루카 복음서 1장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두 여성인 대목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 두 여성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입니다.

엘리사벳은 나자렛에서 약 1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 근처의 어느 고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장차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난 직후(루카 1,26-38) 그 머나먼 길을 떠납니다. 여정의 구체적 과정들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단지 마리아가 서둘러 그 유다 산악 지방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는 것만을 압니다. 그런데 왜 마리아는 거기까지 그렇게 먼 길을 간 것일까요?

마리아가 그곳에 간 것은 자신처럼 하느님께 아들을 임신하는 은총을 받은 존재인 엘리사벳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몇 달 동안 엘리사벳 곁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두 여인의 역사이자 그 두 여인에게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머니가 된 사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가 마리아보다 더 그 사정을 잘 알고 경험을 함께 나누며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두 여인의) 만남에서 마니피캇 찬가[마리아의 노래]가 자연스레 우러나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의 『마니피캇 주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마리아의 말은 위대한 사랑과 생기 넘치는 기쁨의 표현이다. 이는 왜 마리아의 정신과 삶이 영적으로 고양되어 있는지 설명해 준다. 마리아는 ‘나는 하느님을 찬송한다.’라고 하지 않고, ‘내 영혼은 (하느님을) 찬송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나의 모든 삶과 나의 감각이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

‘찬송하다’,‘찬미하다’라는 동사는 ‘위대하게 하다’라는 뜻으로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이라는 점을 발견한 데서 오는 기쁨의 의미를 드러냅니다. 이 기쁨에 따라 깊은 겸손과 벅찬 감사와 그분을 제대로 알아보는 확고한 인식이 뒤따르게 됩니다.

에르메스 론키Ermes Ronchi가 강조하듯 “마니피캇은 마리아의 복음이며, 모든 세대에게 전해지는 마리아의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는 (마니피캇에서) 열 번이나 “(다른 이가 아닌) 바로 그분께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다.”라고 거듭 말합니다. 이는 마치 세상의 논리를 뒤집는 일종의 새로운 십계명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들과 지금도 계속해서 이루어 가시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의 일상생활과 기도 생활 중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경탄할 줄 아는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믿음이 새로움과 그 새로움이 가져오는 놀라운 일들에 열려 있지 않은 믿음이라면, 경탄할 줄 모르는 믿음이라면, 그러한 믿음은 피로에 지친 기도처럼 서서히 꺼져 버릴 것이고, 결국 하나의 습관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단순히 내면의 차원에만 머무르는 찬미의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리아의 노래는 예언적 찬미로서 꾸준히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하느님께서 마음속으로 바라시는 그 역사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찬미한다는 것은 약자들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또한 찬미한다는 것은 세상이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찬가의 말씀들은 우리 각자의 개인적이고도 공동체적인 역사 속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 활동을 깨달을 것을 당부합니다. 여기에는 각 개인이 살아온 삶과 보편적으로 함께 살아온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구원 활동이 포함됩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의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서부터 복음의 사회적 혁신이 열어 가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구원 활동까지 모두가 포함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도 우리의 삶을 살아 있는 찬미가 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또한 매일의 ‘위대한 일들’, ‘큰일들’을 인식하며, 마리아의 목소리에 우리의 목소리를 더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라고 당부합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충실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이어지며, 그분의 정의와 사랑의 왕국이 이미 우리 가운데에 실현되어 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끼아라 루빅은 젊은이들에게 쓴 편지에서, 마리아의 찬가가 지닌 이러한 사회 혁신적 차원을 포착하여 다음과 같이 적은 바 있습니다.

“마니피캇[마리아의 노래]을 읽어 보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교 사회 교리가 처음이자 가장 강력하게 제시되는 지면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언제, 그것을 완전히 실현하게 될까요?”

이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이에 대해 답해 줄 것을 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개입은 마음의 내밀한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오히려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공동생활에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의 스토리에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파트리치아 마촐라
포콜라레운동 국제 본부 「생활말씀」 편집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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